인생을 영상에 담다. 수제화 명인 전태수<영상 자서전>

- 대통령 가족도 사랑한 수제화(homemade shoes)

김서영 기자 | 입력 : 2021/03/17 [07:21]

  

▲ 인생을 영상에 담다. 수제화 명인 전태수<영상 자서전>     © 챌린지뉴스

 

2017년도 한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숙 여사가 신었던 버선코를 닮은 신발이 화제였다.

한국적 미가 돋보였던 그 신발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전태수 명인이다.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제화 외길만 걸어온 전태수 명인은 사람을 볼 때도 얼굴 보단 발에 먼저 시선이 가고, 걷는 모습만 봐도 불편한 신발을 신었는지 알 수 있다.

 

전태수 명인의 구두 인생은 아픔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14살에 서울로 상경한 이후 52년간 구두제작은 그의 천직이었다. 서울 영등포 구두공장에서 잡일을 도우며 구두인생을 시작했다. 다락방에서 쪽잠을 자며 기술을 익혔다.

 

명동의 고급 살롱화를 만드는 유명한 회사에서 11년간 일한 후 1991년 독립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구두를 제작했다. 성실함과 실력으로 사업은 번창했다. 전국 주요도시 매장에 구두를 납품했다.

 

1997년 말 한반도를 강타한 IMF로 그동안 일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최악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기술을 밑천삼아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버틴 끝에 다시 일어섰다.

 

·재계 유명인사들은 물론 연예인, 무대에서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는 가수들이 전태수 명인에게 수제화 제작을 의뢰한다. 전 명인의 신발은 '발이 편한 신발'로 알려졌다.

 

전 명인은 "좋은 신발은 브랜드가 아니라 발이 편한데 있다. 발에 피로가 쌓이는 건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다. 편한 신발을 신으면 몸의 균형도 잡아 주고 피로감도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순수한 노동이 쌓이고 쌓여 최고 경지에 올랐다. 한 분야나 기술에 전념하며 그 일에 정통한 사람. 우리는 그를 명인(名人)이라고 부른다. 하루아침에 명인이 되지는 못한다. 매일 갈고닦아 만들어 낸다.

 

한 평생 구두만을 만들어온 전태수 명인의 꿈은 세계적인 구두 박물관을 세워 한국의 미가 베인 멋진 신발을 길이길이 남기는 것이다. 목표에서도 그의 구두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뜨겁게 느껴진다. ‘구두 명장전태수 대표의 더 자세한 인생 스토리는 도전한국인 영상자서전에서 만날 수 있다. 대한노인회와 함께하는 시니어 영상자서전의 반응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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