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실패와 시련을 도전으로 극복해온 2전3기 주인공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김명수기자 | 입력 : 2020/12/27 [13:47]

[인물탐험실패와 시련을 도전으로 극복해온 23기 주인공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평생을 호의호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노인의 사정 역시 노인이 잘 안다. 처절한 가난이 뒷덜미를 잡거나 혹독한 시련과 실패의 쓴 맛을 겪고도 현실을 탓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으로 성공의 고지에 오른 노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온 의지의 23기 주인공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2차례 낙선 끝에 23기로 당선되어 3선 의원을 역임했고, 대한노인회 선거에 2번이나 실패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재차 도전한 20201019일 제18대 대한노인회 회장 선거에서 23기로 당선의 고지에 올랐다.

김호일 신임회장은 노인 단체에 대한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대한노인회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대한노인회를 사단법인에서 국비 지원을 받는 법정 단체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김호일 회장은 대한노인회가 법정단체로 승격되면 지회장, 연합회장들이 업무추진비를 국비로 지원 받을 수 있어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안정적으로 노인복지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호일 회장은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두 번의 낙선 끝에 23기로 금배지를 달았다.

김호일 회장은 국회의원 3선 의정활동 기간에 노인복지정책연구회 회장을 지내며 우리나라 노인문제를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했다. 3선 국회의원, 정책연구, 현장경험 등이 대한노인회 회장 업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19년 말 현재 800만 명이 넘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에 대한노인회 정식 회원은 270만 명에 불과하다. 대한노인회가 사단법인으로 회원이 되려면 65세 이상 노인이라도 직접 입회원서를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김호일 회장은 대한노인회법을 법정단체로 승격시켜야 한다면서 65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을 자동 정회원으로 하고, 준회원은 60세 이상 국민으로 명기해서 준회원 포함 1100만명 노인의 대표기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호일 회장은 가난이라는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가난은 하나의 힘이며 자존심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신문배달 등 고학을 하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1961년 고교를 졸업하고 빨리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양공대 무시험 지원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진학을 포기했다.

3수 끝에 1963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의 대학생활은 강의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친구들의 도시락을 얻어먹는 것으로 시작됐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맡고 1960년대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제기동에 단칸방을 얻어 어머니를 모셔왔지만 어머니가 몸져누우면서 행시도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 사망으로 충격과 좌절에서 허덕이다가 마음을 다잡고 경제연구소(한국응용통계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조세정책 계량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정책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꿈도 키웠다. 고향 마산으로 내려가 사촌 동생 집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하면서 맨발과 맨 주먹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뛰었다.

 

▲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12월 24일 도전한국인운동본부(조영관 대표)가 수여하는 ‘도전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부터 조영관 도전한국인본부 대표,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 김민섭 국제문화예술기구 이사장, 이돈희 대한노인신문사 수석 부사장ㆍ노인의 날 만든  이  ©

 

12대 총선과 13대 총선의 연이은 낙선 앞에 포기하지 않고 다음 4년을 위해 도전하는 모습은 시민들의 격려로 이어졌다. 199214대 총선은 그에게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처였다.
객관적인 전세는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뒤집을 수 있다는 미묘한 확신이 생겼다.

대학 3, 국회의원선거 3, 기호 3(무소속) 이란 3()행운의 부적처럼 희망을 안겨주었다.

낙향 후 10년 세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산을 누벼온 그의 성실하고 가난한 삶을 아는 지역구의 서민들이 발 벗고 나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세자매가 아빠의 당선을 기원하며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 선물로 전달해 당시 화제가 됐다.

선거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세 딸이 곱게 접은 종이학 1000마리를 내놓았다. 종이학 1000 마리를 접으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 딸이 며칠 밤을 새워 접은 종이학을 실에 꿰어 유세장에 들고 나갔다.
선거 운동원도 없이 유세장 입구에서 두 번 떨어진 우리 아빠 이번엔 꼭 찍어 주이소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어린 딸들 사이로 1000마리의 종이학이 날자 숙연한 분위기에서 청중 사이에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개표결과는 63표차 승리. 맨주먹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자금조직의 절대열세를 딛고 23기 승리를 거머쥔 그의 국회 입성은 종이학 1000 마리의 전설이 현실로 나타난 기적이었다.

초선 국회의원 이듬해인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이후 국회의원 재산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1320만원으로 재산 꼴찌를 기록하여 화제가 되었던 주인공도 바로 김호일이었다.

고학을 하며 대학까지 졸업한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가슴에 간직하며 '너희가 서민을 아느냐'고 반문할 수 있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철학으로 서민들의 영원한 이웃이 될 것을 약속했다.

장기만 이식하면 살릴 수 있다는 아픈 이웃을 위해 장기 기증을 서약하였으니 이만하면 부자가 아닌가.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1224일 도전한국인운동본부(조영관 대표)가 수여하는 도전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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