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장애인 세계최초 히말라야 14좌 도전… 열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06/12 [17:13]

[인물탐험] 장애인 세계최초 히말라야 14좌 도전열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열 손가락 없는 조막손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장애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고봉 14좌중 13좌 정상에 오른 불굴의 사나이다. 어렵고 힘들수록 난관을 뚫고 나가려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는 김홍빈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완등 마침표를 찍기 위해 대장정에 나섰다.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이어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중 이미 13좌를 오르고 마지막 하나 남은 브로드피크(8047m) 정상을 밟기 위해 2021614일 출국한다.

그에게 산은 꿈이다. 삶보다 꿈이 먼저다. 삶은 궁핍해도 좋지만 꿈은 포기할 수 없다. 김홍빈 대장은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을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8000m 14좌 정상을 밟더라도 온전한 몸과 열손가락 없는 장애인이 오르는 의미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끝난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1000번을 시도하겠다는 각오와 100%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1983년부터 산을 탔으니 벌써 39년째다.

28살이던 1991년 북미 매킨리봉(6194m) 단독 등반 중 사고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산이 전부였던 그에게 닥친 현실은 끔찍하고 참담했다. 장애인 운전면허를 따고 이일저일 해봤지만 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뜩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의 발길을 산으로 되돌려 놓는 계기가 되었다. 구르고 넘어지고 뛰면서 국내 산행을 시작으로 잠시 접었던 꿈을 찾아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열손가락 없는 장애의 몸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8000M 14개 봉우리 등정에 나섰다. 열 손가락을 산에 묻고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신념으로 산에서 다시 일어서고 지금까지 산을 오르고 있다.

그 손으로 직접 운전을 하고 산에 오를 때도 단독 산행이 주류를 이루며 더 힘들고 난도가 높은 익스트림 고산 등반을 즐긴다.

김홍빈 대장은 전남 고흥출생으로 광주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광주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산등반을 꿈꿨고 산이 좋아 대학교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을 탔다.

1989년 첫 해외 원정등반으로 에베레스트(8848m)에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000년에 재도전했다가 또 실패하고 2007년에 만년설로 뒤덮인 세계최고봉의 정상을 밟았다. 2013년 봄에는 히말라야 칸첸중가(8586m) 등정을 마치고 악전고투 끝에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

시련은 있어도 그의 인생 사전에 중단은 없다. 어떠한 장애도 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한다. 그는 1365일 모든 삶의 포커스가 산에 맞춰져 있다. 쇄골이 부러진 상태로 물리치료를 받고 약속장소에 나타나서도 산에 대한 말만 나오면 신바람이 난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건물이나 아파트를 드나들 때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 다닌다. 담배를 멀리하고 스키, 사이클,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겨 타는 이유도 원정등반에 대비한 몸만들기의 일환이다.

못 말리는 승부근성에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까지 있으니 무슨 운동을 해도 끝을 본다.

2013년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 3관왕,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도로사이클 개인도로 독주 24km 2, 트랙경기 팀스프린트 1위 기록이 그의 실력을 증명한다.

장애를 입기 전에 암벽등반을 탔다는 그는 현재 대한장애인스키협회 이사, 광주시 장애인사이클연맹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산에 오르더라도 눈보라가 쳐야 재밌어요. 내 배낭 속에는 어떠한 악천후가 닥쳐도 살아나올 수 있는 장비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두려울 게 없지요

산에서 입은 장애를 산을 통해 극복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신저로 불리는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다.

많이 넘어져 봐야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도 힘든 알바 많이 해봤거든요. 실패를 두려워말고 젊어서 알바 등 힘든 일 많이 해봐야 합니다

산이라면 죽고 못 사는 그가 일반인이 알아두면 도움이 될 등산 팁 하나를 알려준다. 산에 갈 때는 배낭이 커야 한다. 언제 어느 때 일어날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산행 중에 뒤로 넘어지더라도 메고 있는 배낭이 크면 그 자체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

해외 원정 등반 떠나기 두 달 전에 허리뼈에 금이 간 적이 있어요. 그래도 원정등반 갔어요. 가면서 다 나았어요. 2008년 마칼루 갈 때였어요. 신기하게도 그 때 가장 쉽게 등반하고 왔어요

열손가락 다치기 전에는 암벽등반을 했다는 그는 오로지 산에 가기 위해서 운동하고 원정등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나에게 산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인생도 물론 없습니다

해외원정 고산 등반 때 칼바람도 무섭지만 그가 꼽는 가장 큰 공포는 순식간에 몰려오는 짙은 구름과 눈보라치는 화이트아웃(white out)이다. ‘시야 상실로 한치 앞이 안 보인다.

10대 때부터 만년설로 뒤덮인 산을 꿈꿨고 항상 갈망하며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산을 타고 있지만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정상 자체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는 과정이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 믿는다.

불의의 사고 이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주변의 편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고 도전을 실행에 옮겨 여기까지 왔다.

장애 산악인중 세계 최초로 엘브루즈(5642m.유럽)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등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000m14좌 가운데 에베레스트(8848m), 칸첸중가(8586m), 안나푸르나(8091m), 가셔브룸(8068m) 13개봉에 올랐고 이제 14좌까지 브로드피크(8047m)만을 남겨놓고 있다.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의 몸으로 왜 그토록 산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지 김홍빈 대장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산에 가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으니까요. 산에 가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져요. 오직 오를 생각만 합니다"

열손가락 없는 산사나이의 꿈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직 산이다.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다. 남극에서 그가 남긴 말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길 원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안정감을 선호한다. 꿈은 꾸지만 도전은 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다시 보인다. 열손가락을 모두 잃은 장애를 안고 멈출 줄 모르는 그의 위대한 도전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김홍빈 대장이 오랜 숙원인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 대위업을 달성할 감동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가 찍는 발걸음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마지막 하나 남은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 정상을 밟기 위해 대장정에 나서는 그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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