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자나깨나 태극기 사랑에 이름도 바꾼 연태극기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06/08 [16:35]

[인물탐험] 자나깨나 태극기 사랑에 이름도 바꾼 연태극기 

 

충청북도 충주시 봉방동에 사는 나라사랑 태극기 보급 운동가 연태극기 씨는 태극기 문양의 독특한 옷차림에 태극기를 앞세운 자전거를 타고 충주 시내 곳곳을 누비는 태극기 아저씨로 유명하다.

 

 

연태극기씨가 그동안 보급한 태극기는 어림잡아 5만장이 넘는다. 태극기 사랑에 빠져 태극기를 끼고 살며 자신의 이름도 바꿨다. 그의 본명은 연종택이었다. 지난 20149월 말에 개명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태극기 홍보와 나라사랑 운동이다. 충청북도, 충주시와 각종 국가단체의 홍보대사를 단골로 맡고 있다.

2018KBS 3.1절과 광복절 특집에도 김구선생복장으로 출연하여 눈길을 끌었다. 충북 역사에 남는 인물로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그가 살고 있는 집 밖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다. 자나 깨나 태극기 사랑이 넘쳐흐른다. 그의 태극기 사랑은 시민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이웃사촌 105세 할머니는 2012년 애국가 4절까지 완창하는 노익장을 과시해서 국가보훈처 주관 나라사랑 애국가 부르기 우수상을 수상했다. 연태극기씨의 영향이다.

앞집 청년은 중학생 때부터 태극기 아저씨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학교를 쉬는 토요일에는 둘이 같이 다니면서 마을청소를 하고 태극기사랑 캠페인도 펼쳤다. 시민들로부터 분신같은 자전거를 기증 받기도 했다.

연태극기씨에게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하루 최소 24km를 탄다. 새벽 550분 기상하면 동네 청소를 한다. 집에 들어와서 아침 먹고 930분부터 2시간동안 충주시내 청소를 한다.

점심 먹고 14시부터 8개 단체에 태극기 홍보를 한다. 대한민국 나라사랑 태극기를 들고 충주 시내를 3바퀴 돌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그의 태극기 홍보는 행사장에서도 빛이 난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리는 축제에도 어김없이 찾아갔다. 매년 열리는 충주세계무술축제 현장을 찾아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 참가자들에게도 태극기를 나눠주며 대한민국을 홍보했다.

행사가 끝난 뒤 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 모든 집에 빠짐없이 태극기가 걸리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지금 여기 봉명동으로 삶의 둥지를 튼 지 벌써 50년째로 1972년부터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꿈에도 잊지 못할 제천시 한수면 영리 고향마을이 1972년 충주댐으로 수몰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왔다.

고향 생각에 한이 맺혀 집 거실 수족관에 수몰마을(미니어처)을 조성하고 부모님 사진도 액자로 만들어 넣어두었다. 하루에 두 번씩 돌아가신 부모님께 식사를 차려드리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심정으로 수족관 물고기 먹이를 준다.

한전에서 1980 ~ 2002년까지 22년을 근무했다. 재직 시절 마음에 맞는 사우들끼리 의기투합하여 맺은 의형제가 각 도에 한 명씩 있다.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흐르고 다니던 회사를 떠났어도 그때 맺은 의형제는 지금까지 끈끈하게 지내고 있다. 그의 인생사가 흥미롭다.

한전 퇴직하고 200558일 어버이날 롯데마트에 대한민국 실버사원 1기로 입사했다. 고객안내 고객응대 업무를 맡아 88개월 근무하고 2014130일 정년퇴직했다.

자전거를 타고 태극기 홍보를 18년째 해오면서 태극기를 보급하였다. 그가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태극기는 모두 대한민국 나라사랑 선양회로부터 후원받고 있다. 1회용이 아니고 반영구적으로 눈비를 맞아도 훼손되지 않는다. 깃대와 무궁화깃봉까지 세트로 된 태극기다.

8남매 중 7번째. 가족사가 짠하다. 맏형(봉택)과 둘째형(구택)625때 납북됐다. 큰 형이 먼저 행불됐고 둘째형은 충주농고 2학년 때 교문에서 납치당했다.

갑자기 소식이 끊긴 둘째 형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아버님 저 거제 포로수용소 있어요. 잘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쌍둥이 작은 아버지는 일제 때 일본인을 흠씬 두들겨 패고 만주로 피신하여 터를 잡았다. 그 자손들 즉 연태극기씨의 4촌 형제들이 하얼빈에 살고 있다.

연태극기씨의 집안 내력이 참으로 기구하면서도 일제치하와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오버된다. 화제를 바꿔 연태극기로 이름을 바꾼 이유를 물었다.

시민들이 개명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꾸 해요. 듣고 보니 그게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201410월부터 이름을 바꿔 불렀어요. 연태극기로. 명함도 새 이름으로 바꾸고

그는 한때 남한과 북한을 대표하는 명견 진돗개와 풍산개를 키웠다. 20006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 방북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 공교롭게도 연태극기씨가 키우던 진돗개와 풍산개 사이에 새끼 5마리가 태어났다.

온 국민이 간절히 염원하는 민족 통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개를 통해 남북통일 시켰다. 개 이름도 순우리말로 지었다. 우리 소원 남북 통일 봉구. 봉구는 625때 납북된 두형의 이름(봉택 구택) 첫 자를 땄다.

중국 하얼빈으로 피신하여 뿌리를 내린 쌍둥이 작은 아버지의 후손인 4촌 형제들과는 서로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며 살고 있다.

납북된 두 형님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도 중국에 건너간 작은아버지 자손들로부터 들었다. 지금은 두 작은 아버지마저 모두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다.

그는 목숨이 다하는 그날 까지 나라사랑 태극기 홍보를 계속 이어가겠노라고 다짐한다.

태극기 사랑이 펄펄 끓어오르는 태극기 아저씨의 진심이 가득 담긴 마음만으로도 고맙고 정감이 넘친다.

그의 집은 학생들이 단체로 나라사랑 견학을 온다. 나라사랑 태극기 보급운동에 노익장을 불태우는 그의 집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첫 방문자가 연태극기씨의 집 대문 입구 계단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 자동으로 애국가가 흘러나온다.

그 뿐 아니다. 그의 집 담벼락에는 초대형나라사랑벽화가 그려져 있다. 20195월 한 화가가 연태극기씨의 애국심에 감동하여 며칠을 공들여 그린 벽화다. 그냥 벽호가 아니다. 우리땅 독도까지 담아낸 대한민국 지도가 펼쳐져 있고, 중앙에 무궁화가 있는 벽화다. 그리고 연태극기씨와 그의 분신인 자전거가 있다.

코로나가 발생한 20201월 이후 국가 행사가 대폭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연태극기씨의 나라사랑은 더욱 빛이 났다.

연태극기씨는 2020815광복절, 31, 625행사를 자신이 거주하는 자택에서 혼자 개최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한반도 5000년 역사 이래 국가 경축일 행사를 개인이 혼자 개최한 전례는 연태극기씨가 유일하다.

연태극기씨가 개인적으로 치른 경축일 행사에는 충주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이 참석하여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큰 국가행사나 다름없었다.

연태극기씨의 차고 넘치는 나라사랑 태극기 사랑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 이 기사는 인물뉴스닷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inmulnews.com/sub_read.html?uid=6560)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포토기사
[포토에세이] 만추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