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맞춤 정장 평생 외길 걸어온 양복명인 류동선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06/01 [11:41]

[인물탐험] 맞춤 정장 평생 외길 걸어온 양복명인 류동선

 

아무리 기성양복이 유행하는 시대라지만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살리고 돋보이게 하는 맞춤정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서울 종로 5가에서 맞춤양복전문점(킹테일러)을 운영하는 류동선 대표는 이 분야에서 알아주는 양복명인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성복과 달리 맞춤 정장은 한 벌이 완성되기까지 수공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 많던 양복점이 사라진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성양복이 대세를 이루는 현실에서 류동선 양복명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8세 때 이 바닥에 뛰어들어 오랜 경험과 장인의 고집으로 양복관련 한우물만 파오고 있다.

어느 업종을 막론하고 고수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류동선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양복업계에서 가장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능력을 인정받고 명인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자그마치 57년이 걸렸다.

그 긴 세월을 인내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다. 그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사다리를 한발 한발 기어오르듯 봉제부터 재단, 디자인을 모두 거쳤다는 사실이다.

대전에서 양복점에 취업하여 일하다 큰 물서울로 진출했다. 손재주가 좋고 손바느질을 잘하는 그가 만드는 양복은 고객들이 알아봤다. 옷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재주문이 이어지면서 점점 유명세를 탔다.

지방에서 가장 밑바닥부터 출발해 서울에서도 날고 기는 실력자들이 모이는 소공동 롯데, 충무로, 명동을 거쳐 현재 서울 종로5가역 지하쇼핑센터에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양복점을 이전해도 한번 인연을 맺으면 잊지 않고 찾아주는 30년 이상 단골고객이 류동선 명인의 실력을 말해준다. ‘BEST 명장칭호까지 받았으니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양복 또한 명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협회 일에도 열심이다. 류동선 명인은 1979년 대한복장기술협회 중앙위원을 시작으로, 1980년 대한복장학원 단기대학 강사, 1991년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이사. 1995년 한국맞춤양복재단사협의회 회장, 1998년 한국맞춤양복디자이너협의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에도 한국맞춤양복협회 운영위원, 자문위원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양복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맞춤양복협회에서 1년에 한 차례씩 개최하는 패션쇼에도 꾸준히 참가해오고 있다. 그가 만든 명품 양복을 입은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다.

1991년 제24차 세계주문양복연맹총회 패션쇼, 2018년 제27차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패션쇼에도 참가했다.

류동선 명인은 최근에 특별한 취미가 생겼다. 그동안은 한국맞춤양복협회에서 패션소를 열 때마다 류동선 명인이 만든 양복을 입은 모델들이 출연했다.

나이 70을 훌쩍 넘겼지만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모델은 아무나 하나! 물론 아니다. 하지만 류동선 명인은 아무나가 아니다.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로 그 누구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멋쟁이다.

류동선 명인이 자신의 숨은 끼와 멋쟁이 기질을 살려 늦은 나이에 시니어모델로 변신을 했다. 모델 양성 전문 교수로부터 6개월간 정식으로 시니어모델 지도를 받았다. 늦깎이 나이에 시니어모델로 변신하여 활동하고 있다.

류동선 명인은 시니어 패션쇼에 시니어모델로 참가하여 화려한 패션의상을 입고 런웨이를 하면서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류동선 명인은 멋을 아는 패셔니스타답게 시니어 패션쇼에서 수트발 잘 받는 시니어모델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시니어모델로 변신하여 제 2의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류동선 명인을 보면 도전에는 나이가 없고 변신은 자유다.

류동선 명인은 평생 잔뼈가 굵은 맞춤 양복은 평생 직업이고 여기에 더하여 취미 삼아 시니어모델을 병행하면서 인생 2모작을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류동선 명인은 기성 양복에 밀려 맞춤 양복이 사라지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면서 맞춤 양복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을 회고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전국 어디를 가나 양복점이 대세로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철따라 양복을 맞춰 입었다.

대학 합격 또는 취직을 하면 기념으로 맞춤 양복은 필수였고, 약혼 및 결혼식 때는 본인은 물론 양가 부모님이나 중매쟁이에게도 맞춤 양복을 선물로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많던 양복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이제는 도심에서도 양복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만 길게 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지친 탓일까? 경쟁에 떠밀려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시절을 풍미했던 유행을 소환하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레트로 (retro) 바람이 다시 일고 있다.

단골손님이 주류를 이루는 킹 양복점에도 이러한 추세를 만영하듯 새로운 손님들이 종종 찾아와 맞춤 양복을 주문한다.

류동선 명인도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10여분 남짓 분량으로 압축하여 영상 자서전을 만들었다.

양복 입은 멋쟁이 신사들을 반백년 넘게 상대하다보니 류동선 명인 자신도 신사복을 즐겨 입는다.

류동선 명인은 매장에서도 날이 선 와이셔츠에 깔끔한 양복을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션 감각을 살린 스타일로 손님을 맞이한다. 자신이 입는 양복에 따라 구두도 천으로 만들어 색상까지 맞춰 신는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부터 얼굴이 많이 알려진 스타에 이르기까지 킹테일러를 찾는 고객층도 다양하다.

킹 양복점을 방문해서 류동선 명인이 일하는 모습을 몇 시간 동안 지켜보았다. 류동선 명인은 양복을 만들 때 가장 빛이 난다.

손님들이 수시로 매장에 들어오고 나간다. 단골 고객이 찾아오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알아서 척척 움직인다.

화려한 색상의 긴 소매 와이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줄자로 치수를 재고, 재단을 하고, 가봉을 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한낮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추호의 흐트러짐 없이 일에만 집중한다.

류동선 양복 명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맞춤 정장에 맞춤 와이셔츠까지 세트로 차려입으면 품격이 달라진다.

유명 탤런트, 배우 등 연예인만 해도 50여 명의 양복을 만들었다니 더 이상 무슨 검증이 필요할까! 그 오랜 세월동안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장수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11상대 맞춤옷으로 손님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자의 우문(愚問)에 짧지만 명쾌한 현답(賢答)이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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