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의 인물열전] 조영관편 (4) 내 고향 익산, 가슴뛰는 추억이 있는 곳

김명수기자 | 입력 : 2020/01/21 [09:05]

[김명수의 인물열전] 조영관편 (4) 내 고향 익산, 가슴뛰는 추억이 있는 곳

 

도전한국인본부 조영관 대표에게 고향은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다. 전라북도 익산의 산골마을. 옛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릴적 고향모습이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는 여산 남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안타깝게도 학생수가 갈수록 줄어 그가 다녔던 학교는 2009년 폐교되고 말았다. 남초등학교가 문을 닫기 직전에 그는 모교 후배로부터 한통의 이메일 편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남초등학교 운영위원장 김미라입니다. 저는 남초등학교 20회 졸업생이며 현재는 남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농촌의 젊은 인구 감소와 시내 학교로의 이탈로 학생수가 감소되어 폐교까지 이르게되어 저역시 아쉽고 고민을 많이해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모교의 폐교에 대한 아쉬움은 추억으로 간직하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글을 선뜻 보내주신다니 정말 감사하고요. 이 문집은 학교는 폐교되지만 영원히 남고 간직되리라 생각됩니다.

글 내용은 선배님께서 생각하신대로 써주시면 될 것 같고 분량은 A4용지 한 페이지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글이 완성되면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고 추운날씨에 감기조심하세요^^ [20081211일 받은 글]

 

어린시절 조영관의 꿈을 키우고 추억을 쌓았던 남초등학교는 20092월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학교가 없어졌다고 추억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조영관 대표는 사라져가는 고향마을과 학교를 마음에 옮겨놓았다. 고향이 그리워지면 마음에 담아둔 옛날의 기억들을 떠올려 그 시절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역시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다.

 

▲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이사람! 이 꼬마 어린이가 훗날 자라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시민운동가가 되었다. 도전전한국인본부 조영관 대표다. 초등학교 졸업기념으로 3년간(4-6학년) 담임을 맡았던 류준선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   ©

   

 

내 고향 전북 익산, 가슴뛰는 추억이 있는 곳.

가슴 뛰게 하는 내 고향 초등학교- 폐교를 앞둔 마지막 졸업생

- 조영관(13회 졸업생)

 

아카시아 꽃향기, 밤꽃 향기가 어우러진 전라도 산골마을. 진달래꽃이 앞산을 수놓은 곳에서 뛰어 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까지 자갈길 신작로 오리(五里)를 걸으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벗 삼고, 커다란 그늘을 드리워주었던 미루나무가 있던 곳 입니다.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산골 소년은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뛰놀던 추억은 따뜻한 고향이 되어 내안에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 등교 길에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 가방을 들어준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괜찮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 조회시간에 선생님은 나를 칭찬하여 주셨고. 칭찬을 받은 나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묻었습니다.

그 칭찬은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잊혀지지 않고 또렷이 배려나눔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가슴속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여산이라는 이정표가 나오면 가슴이 뛰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초등학교 동문회를 서울에서 가끔하고 있습니다. 사투리와 구수한 욕설이 섞여 웃음꽃이 피는 행복한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기억해보면 금방이라도 학교가 나타납니다.

비탈진 언덕길로 학교에 들어서면 책 읽는 하얀 동상과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흉상과 글이 있구요. 운동장과 교실들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언제라도 손짓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것을 한때는 도시 아이들과 경쟁하면서 부끄러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가 부터 우리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린시절은 시골에서 보내는게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감수성과 창조성이 있습니다. 자연은 문명이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것은 마음속의 큰 보물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에 있는 이름 모를 들풀, 작은 돌멩이도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황량한 들판에서 자갈을 골라내고 거름을 주는 농부처럼 거칠은 내 마음의 밭을 기름지게 일구어 주는 고향이며, 어머니의 품이기도 합니다.

10세 때 보약 1첩은 30세 때 보약 30첩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는 것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은 멀어졌지만, 직장인이 되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경제선생이 되어 자원봉사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금융기관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현장에서 습득한 것들을 토대로 신용과 경제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신기한 세상 이야기인 듯 바라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중년의 나이이지만 집근처 바위가 많은 서울의 불암산에서 카메라와 작은 메모지를 준비하여 올라갑니다. 바위틈에 작은 풀 하나도 간직하고 싶어 셔터를 자꾸만 눌러댑니다. 마치 고향의 산천을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빈 몸이 되어도 서글퍼 하지 않습니다. 봄이면 다시 새잎이 돋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없어진다고 아쉬워하지 않는 것은 졸업한 동문들의 마음속엔 더욱 애틋한 붉은 해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전북 익산 여산휴게소 근처인 초등학교. 바로 여산 남초등학교입니다. 언제나 우리 마음에 간직 될 잊혀지지 않는 첫 사랑입니다.

 

▲ 초등학교 소풍 사진(왼쪽)     © 챌린지뉴스

 

 

 

그는 1960년대 중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 근처인 전북 익산 여산에서 태어났다. 여산휴게소가 있는 곳, 호남고속도로 근처에서 자랐던 탓에 그 길을 따라 서울로 가는 꿈을 꿨다.

평범한 시골소년이 산꼭대기 나무에 걸터앉아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를 내려다보면서 가슴에 품었던 꿈을 위해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갖고 있다.

 

아마 이 즈음부터 도전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는지

 

그는 바쁜 삶 속에도 2008년 서라벌 문예원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2011봄에게 길을 묻다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삶의 완급을 적절하게 조절해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뽐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의 고향, 시골, 자연, 향토생활의 경험이 그를 시인으로 이끈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여행을 함께 했던 글을 통해서 자연친화적인 감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려고 준비하는 어느 멋진 토요일 봄날

어머니를 모시고 봄맞이 고향 여행을 위하여 차를 몰았다.

새벽부터 준비한 하루의 여행은 서울에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향하였다.

고향으로 들어서는 길들은 반듯한 아스팔트로 인하여

멀게도 느껴지던 길들이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한 중학교를 지나서 초등학교 근처 동네를 지나가고 있다.

지금쯤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혹시 저 멀리 모여있는

우리 또래들이 친구는 아닌지. 이곳만 오면 가슴 떨리는 것은 왜 그럴까?

가람 이병기 시인의 생가를 지나치며 여산 삼거리에 들어섰다.

잔잔한 호수처럼 펼쳐진 큰 저수지는 서울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듯 했다.

선산까지 어머니 직접 지팡이를 의지한채 올라왔다.

봄 햇살은 따듯하여 잔디위에서 한 숨 자고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저수지 위로 펼쳐진 용화산은 마치 학이 비상하는 모습으로 웅장함과 비장함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린시절 살던 집근처로 이동하였다.

키 큰 감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초라하게 푸른 잎새도 없이 큰 줄기만 품고 있다.

집 뒤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서 올라가니 천수답 논들이 개간이 되어서

멋지게 사각형 모양으로 크게 하나로 만들어졌다.

어린시절 염소와 소를 끌고 다니던 길. 하늘소와 벌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상수리 나무는 여전히 숲속의 주인공인양 하늘을 향하여 서 있었다.

너무도 반가운 나무들이다. 안아주고 싶고 말하고 싶어졌다.

잘있었지? 그래 헤어지고 나서 자주 오지 못해 미안하다. 그시절

나무 밑둥아래 틈새에서 살던 하늘소는 나의 애지중지 장난감이었지.“

상수리 나무는 말이없다. 다만 스쳐가는 바람속에 남겨진 잎새들의 떨림이

나를 가슴 뭉클하게 한다. 

 

봄에게 길을 묻다시집을 낸 조영관은 어린시절 산과 들이 많은 곳에서 보낸 것에 감사함을 갖고 있다.

 

남촌에서 전해 주는 봄소식

-조영관

 

 

먹고 산다는 것이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길가에 핀 노란 개나리 꽃은

아는지 모르는지

올해도 그 자리에서

환하게 웃어 준다.

 

남촌에서

봄이 왔다는 소식을

어느 마을 어느 산을 지나

고향의 집 앞을 살며시 지나서

도심 속 은빛 아파트 이곳까지 전해주네.

 

천리길 마다 않고

꼬박 일주일 달려와서

전해 주는 남쪽의 봄소식

 

경기 불황도

봄 소식에는

이기질 못하고

마음은 노오란 꽃망울을

벌써 터트렸네

 

 

조영관 시집에는 고향이 많이 등장한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집을 평론한 이길연 문학평론가는 조영관 시집에 대해서 고향의 회복을 강조했다.

 

농촌사회의 혈연적 공동체와 퇴락한 고향의 회복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연의 고향인 것이다. 도시적 삶의 출발점이자 도시인들의 정서적 정착지는 역시 자연이다. 자연은 결국 도시적 일상과 정서 가운데 상처 받고 내몰린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영원한 고향인 것이다.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조영관의 의식 저변 가운데는 자연을 향한 강렬한 희구와 붕괴된 고향에 대한 복구를 소망하고 있다. 이는 곧, 그의 작품 가운데 어릴 적 고향에 관한 체험의 재구성으로 나타난다.

 

시골 마당 한켠

우리 가족과 누렁소까지

모기를 막아주는 모깃불이 그리워지네요.

 

여름날 초저녁 마당에는

모깃불 쑥대 향기가 나고

아버지는 지게 위

젖은 소 깔 한 뭉치 내려

모깃불 위에 덧 입혀

긴 밤 오랫동안 가게 합니다.

 

고향의 젖은 풀향기는

잔잔하게 초가집을 에워싸고

내 마음 속 쑥 향기 모깃불은

아직도 솔솔 피어납니다.

(조영관 시 모깃불일부)

 

시인 조영관은 시를 통해 성장기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시각화하고 그리움의 전형으로 되살리고 있다. 고향에 관한 그리움과 정서는 다른 작품에도 나타난다. “여름날 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대청마루 위에/ 동네에서 맨 처음 새로 산/ 이장님 댁 다리가 네 개 달린/ 흑백 금성 텔레비전 앞에/ 동네 사람들 하나씩 모여든다.”로 시작되는 작품은 서술로써 구체성을 확보한다.

 

오늘은 김일 선수가 레슬링 하는 날

사각의 링 안에서 일본 선수의

반칙으로 거의 패할 즈음

박치기로 상대를 제압해

역전을 시킨다.

 

승리의 함성소리로

멍석 위 사람들은 난장판이 되어

서로들 박치기 흉내를 내다가

이빨이 부러져 피가 나도

툴툴 털고 일어난다.

 

인심 좋은 주인댁에서

준비한 빠알간 수박 나눠 먹으며

그렇게 농촌의 여름밤은

시원하게 익어간다

(조영관 시 멍석 위에서’ )

 

근대산업화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문화는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텔레비전이다. 대중매체로서의 텔레비전은 여러 가지 생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혁명을 유도했다. 프로 레슬러 김일 선수는 당대 영웅으로 국민들의 정서와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대리자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승리로 말미암아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뭉쳐지는 농촌공동체를 이뤄냈고, 이러한 공동체의식은 혈연적 공동체로 발전해 나간다.

 

엄마 손잡고

이른 새벽 교회 종소리 들으며

걷던 때가 그리워진다.

 

불록 솟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세월의 흔적을 역력히 남기고

마른 손 위로 튀어난

핏줄의 헐떡임이

내 가슴에 요동쳐 온다.

 

이 모습 그대로도 좋으니

오래 사시며

자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소서.

(‘자식들의 버팀목일부)

 

▲ 엄마,조영관,외할머니 사진     ©

 조영관의 시는 어렸을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외할머니 댁을 방문한 모티브를 떠올린다. 세월이 흘러 그 때의 젊은 어머니는 이미 늙고 노쇠했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지켜주고 삶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을 희구하는 신앙의 합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어릴 적 혈육에 대한 다양한 형상화는 농촌 공동체의식의 회복을 도모하여 현대사회의 메마른 정서를 새롭게 부활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며칠 동안 부산했던 자리

자식들은 떠났지만

크고 넓기만 한 안방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다.

 

안방구석에 주인 잃은

꽃 양말 한 짝 굴러다니고

 

마당에 쌓인 눈 헤집고

다닌 자동차 바퀴 자국은 휑하게

남아 있다.

 

만나는 기쁨보다

보내는 아쉬움 커지고

먹다 남은 찰떡만이 접시 위에 굳어져 가네.

(‘텅 빈 고향집일부)

 

텅 빈 고향집은 결국,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이 고향을 지키는 우리 농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미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농촌은 꽃 양말 한 짝 굴러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혈연적 가족공동체를 구가하는 조영관의 시의식은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연단이요,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의 시 가운데는 끊임없는 자기 모색의 길이 담겨 있다.

 

 

내가 먼저 나가볼게

- 조영관

 

아직은 봄이 도착 안했어

그래, 맞아 좀 더 기다려보자.”

 

추위와 따스함이 그네를 타고

세상에 나갈 기대감에

잠을 못 이룬다.

 

내가 먼저 나가볼게


스쳐가는 찬바람에도

봄 소리로 알아듣고

진달래 꽃 한 송이

불쑥 고개 내민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인생이라는 헬렌 켈러의 말처럼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도전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면, 자연이 우리에게 꿈꾸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존 업다이크(John Updike)는 말했다.

성공은 꿈꾸는 자의 것이고, 긍정적 마인드와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만 있으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2KM를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닌 조영관. 비포장도로인 신작로를 걸으며 자연과 벗삼아 생활하였다. 그의 시집과 인간관계를 면밀히 살펴보면 결론은 단 하나. 순수함과 포기가 없는 끈기 많은 작은 거인이다. 도전만이 희망이고, 누군가의 희망을 만들어주려는 레인메이커가 분명하다.

 

 

까치 밥

- 조영관

 

양지바른 산등성이 아래 시냇물은 흐르고

짚 새로 엮은 초가집 옆에

붉게 익어가는 감나무 한 그루 서 있다.

 

대나무 꼭대기 갈라

나뭇가지 사이에 끼고

검정 고무줄 묶어

감을 딴다.

 

또옥 또옥

익어가는 벌그스레한 감은

바구니에 가득 가득

 

행운을 가져다 주는

까치를 위해

나무 꼭 대기에 남겨둔 홍시

 

부뚜막

따스한 온기가 있는

무쇠 솥 안에

남겨둔

감자 세 개에서는 온기가 남아있고

 

나무 위에 매달린

붉은 홍시는

하얀 눈에 덮힌 채

붉은 사랑을 키워간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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